복골마을 상복리

오래된 미래 복골마을

5백년 전통을 간직한 오래된 전통마을

5백년을 지내온 복골마을 이야기

마을 연혁

강현면

◦ 양양군 강현면 상복리는 조선시대 강선정의 이름을 딴 강선면(降仙面)에 속했다.
◦ 1896년 고종 33년 강선면은 12개리로 재편.
◦ 1914년 군면의 통폐합에 따라 사현면과 도문면 도문리 일부를 포함해 강선과 사현의 이름 한자씩을 따서 강현면(降峴面)이라고 이름 지었다.
◦ 1945년 해방 후 북한 치하에 있다가 한국전쟁 중에 수복되어 군정 치하에 있었다.
◦ 1954년 11월 행정권 이양으로 대한민국에 복귀.

상복리

◦ 5백여년 전 김해김씨가 들어와 살면서 처음 부락을 이뤘다.
◦ 복골 위쪽에 위치하여 ‘상복골’, ‘웃복골’, ‘상복동’이라 하였다.
◦ 과거 문헌과 지도를 살펴보면 처음 마을이 형성되었을 때 ‘복동(福洞)’으로 불렀다.
◦ 1757년(영조 33년)~1765년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강선면에는 둔전동리(屯田洞里), 상복동리(上福洞里), 석교리(石穚里), 물치진리(勿編津里는沕淄津里의 오자로 보임)가 나온다. 이후 복동 일대는 1800년대 들어 상복동과 하복동과 나뉘고, 1900년대 초반에 상복동, 중복동으로 나뉘었다.
◦ 1900년대 이후 상복리는 지금의 설악동 C지구 핏골일대와 장재터까지 포함되었다. 그래서 상복리 본마을은 상복1리, 장재터 일대는 상복2리로 나뉘었다. 상복2리는 1982년 12월 30일 공포된 대통령령에 따라 다음해인 2월 15일 속초시 설악동으로 편입되었다.

 

문헌에 나오는 상복리

1757년(영조 33년)~1765년 편찬, 여지도서(輿地圖書) 상복동리上福洞里
강선면 상복동리는 관문 북쪽 25리에 있으며, 편호 15호, 남자 23명, 여자 31명이다.
降仙面...上福洞里自官門北距二十五里編戶十五男二十三口女三十一口

1759년 양양부읍지(襄陽府邑誌) 복동리福洞里
강선면 복동리(福洞里)는 관문 북쪽 20리 떨어져 있고, 편호(編戶) 24호, 남자 45명, 여자 45명이다.

1792년 정조 16년 윤4월7일 (일성록) 상복동上福洞
이달 2일에 양양부의 화재를 당한 곳으로 달려가서 석교(石橋), 상복동(上福洞), 부월(扶月) 등 3개 마을 54호의 집을 짓고 있는 상황을 한 곳 한 곳 살펴보니, 대소(大小)의 민호들이 모두 집을 지어 대부분 들어가서 살고 있었으므로 살 곳을 잃어버린 데 대한 걱정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今月初二日馳到襄陽府被燒處石橋上福洞扶月等三里五十四戶之結構形止逐處看審則大小民戶已盡結構擧皆入處一無失所之患而

1871년 관동읍지 상복동리上福洞里

1899년 양양군읍지(襄陽郡邑誌) 상복동上福洞
강선면 / 상복동(上福洞)이 (부의) 북쪽 25리에 있다. 上福洞北距二十五里

1912년 조선지지자료 상복동上福洞 / 붓복골
강선면 상복동(붓복골), 중복동, 하복동
강선면 상복동 大鳥坪 하사평 / 피곡(皮谷) 핏골


1916년 지적원도 상복리上福里

 

지도에 나오는 상복리